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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정공>통훈대부태인현감공휘대승묘갈명(通訓大夫泰仁縣監公諱大承墓碣銘)
通訓大夫泰仁縣監公諱大承墓碣銘 順天郡住岩面飛龍村後鵲峯下負艮原即通訓大夫行泰仁縣監趙公諱大承藏也後三百餘年壬戌秋後裔昌周洪根炳箕等使炳寬千里請余銘將以勒石樹阡按公字克紹玉川人高麗檢校侍中璋爲鼻祖三葉有諱元吉典工判書封玉川君諡忠獻子瑜進文至副正事親孝行三年喪當鼎革杜門罔僕世宗旌其忠孝章甫爼豆之孫智崑官井邑縣監輿地勝覽載其治續四昆季友愛築相好亭湛樂其中即公曾祖諱和忠武衛副司直諱介臣司憲府監察寔祖禰兩世妣宜人昌原丁氏漢之女公自幼事親考生死葬祭一遵禮制處弟妹盡其歡洽性又好學三灘大春侮窓大成三從昆季皆一門善士許江湖淹鄭圃堂思翊皆同鄉重望也而公與資麗澤金甑山鶯祥自休菴仁傑又以材器需世許之明廟壬戌司憲府監察乙丑泰仁縣監法陳古靈仙居之治敎以八條曰愛君愛父宜家保族悌長善交務讀務耕鄉俗賴以丕變又兼本縣講學堂訓導訓鄉子弟正其趨向吏民相和而歌曰昔有陳古靈善諭仙居俗今有趙明府善化吾鄉俗居三年丁卯明廟棄臣民公解紱歸田壁上書桐江明月栗里淸風八字以示其意及龍蛇兵興二甥許鏡許銓兄弟起義旅赴鬪公傾家餉車送從姪瑋扈駕龍灣錄宜務二等勳公所以密伸者如此生年月日無傳忌甲辰二月十九日配令人朔寧崔氏參奉康濟女墓用魯衛禮一男珏訓錬奉事有孝行進士金潗弘毅二女婿孫義吉通德郎金光述張元俊時耈時鼎維春維夏維憲維域曾玄孫銘曰南陔白華大本既立埍箎迭吹朝葢暮習斯又取斯魯多君子甑老休翁是知德者牛刀割鷄薄試南州仙居之治歲僅再周中途泣弓歸去來辭桐江栗里風月襟期國歩百六猖獗島夷志切敵愾恨身己衰二甥赴難糧饋千里報靮龍灣有是猶子迹晦林樊義薄雲天受天之祐令終餘年鵲峯嵯峨萬古幽宅紀實詔後有碣三尺 德水 李商永 撰 敎授官滄上 통운대부태인현감공휘대승묘갈명(通訓大夫泰仁縣監公諱大承墓碣銘) 순천군 주암면 비룡촌후 작봉아래 간좌원은 곧 통훈대부 행태인현감 조공 휘 대승의 무덤인데 삼백여년 뒤인 임술(一九二二) 가을에 후손 창주 홍근 병기 등이 병관을 시켜 천리 길 나를 찾아 돌에 문자를 새겨 무덤에 세우려 명을 청하기에 살펴보니 공은 자는 극소이며 옥천인이다. 고려 검교시중 장을 비조로 하여 삼세에 휘 원길이 있으니 전공판서이며 옥천부원군을 봉했고 시호는 충헌이다. 그 아들 유는 진사와 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에 이르렀는데 어버이를 효로 섬기고 삼년상을 행하였다. 고려가 망함을 당하여서는 문을 닫고 망복신으로서 의리를 지키니 세종은 그 충효에 정려를 내렸고 선비들은 사우에 향사하였다. 그 아들 지곤은 관이 정읍현감인데 여지승람에 그 치적이 실려 있는데 사형제가 우애하고 상호정을 짓고 그 안에서 즐겼으니 곧 공의 증조이며 휘 화는 충무위 부사직이고 휘 개신은 사헌부 감찰이니 실로 조고와 고의 양세이다. 비 창원정씨는 한의 여인데 공은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효로 섬기고 생사장제를 오로지 예제를 지켰으며 제매에게는 그 환흡함을 다하였다. 성품은 또한 학문을 좋아하여 삼탄 대춘과 매창 대성의 삼종항간은 모두 일문의 선사이며 허강호 엄과 정모당 사익은 모두 중망있는 동향사람인데 모두가 공과 더불어 학문과 덕을 닦는데 도왔고, 김증산 난상과 백휴암 인걸은 또 세상을 구하는데 재능과 기량으로 허하였다. 명종 임술(一五六二 명종十七)에 사헌부 감찰, 을축(一五六五年 명종 二十年)에 태인현감에 제수되었는데 진고령(송나라때의 명관)의 법으로 속세를 떠난 선계와 같이 다스렸는데 팔조를 가르치어 말하기를 임금과 아비를 사랑하며 가정은 화목하고 친척을 지키며, 어른을 공경하고 친하게 사귀며 학문과 생업에 힘쓰라 하니 고을의 풍속이 이에 힘입어 구습이 타파되었다. 또 본 고을 강학당 훈도를 겸하였는데 고을의 자제를 가르치기를 나아가는 방향을 바르게 하라 하였다. 아전과 백성이 서로 화하여 노래하기를 「옛날에는 진고령이 있어 청아한 고을의 풍속을 잘 가르쳤으며 이제는 조명부가 있어 우리 고을의 풍속을 잘 교화시켰네」 삼년이 지나서 정묘(一五六七년 명종 二十二년)에 명종이 서거하니 공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벽상에다 동강 명월이 율리 청풍의 여덟 자를 쓰고 그 뜻을 보이었다. 임진왜란에 이르러 두 생질 허경 허전의 형제가 의병을 일으키어 싸움에 다다르니 공은 가산을 털어 군량을 마련하였고, 종질 위를 보내어 용만으로 호가케 하니 선무이등훈에 녹하였는데, 공은 몰래 편 것이 이와 같았다. 생년월일은 전하지 않고 갑진(一六○四년 선조三十六년) 二月十九日 기일이다. 배 영인 삭녕최씨는 참봉 강제의 여인데 묘는 노위의 예를 썼다. 일남 각은 훈련원 봉사인데 효행이 있었고, 김 집과 홍의는 두 여서이며 손 의질은 통덕랑이며, 김광술, 장원준, 시구 시정 유춘 유하 유헌 유성은 증현손이다. 명하노니 남쪽 언덕에 흰 꽃이 피었으니 큰 근본이 이미 섰도다. 형제가 화합하여 아침저녁으로 익혔도다. 여기에서 또 이를 취하니 노나라의 군자가 많도다. 김증산과 백휴암이 덕 있는 것을 알았으되 능력 있으나 작게 쓰여 박하게도 남쪽 고을에 쓰였네. 선정 겨우 두해에 중도에 벼슬 버리고 귀거래사를 읊었네. 동강과 율리에서 풍월을 벗 삼고, 나라에 액운 있어 섬 오랑캐 창궐하니 뜻은 적개심이 간절했으나 한스럽게도 몸은 이미 노쇠 했네. 두 생질을 싸움터에 보내고 천리길에 군량을 보냈네. 용만까지 임금을 모시니 이는 아들과 같이 가르침이 있었도다. 산림에 숨었으나 높은 의리는 구름 하늘에 닿고 하늘의 도움을 받아 남은 생애를 마치게 하였네. 작봉은 높이 솟아 만고의 유택이요 사실을 기록하여 뒤에 밝히니 석자의 빗돌이 있도다. 덕수 이상영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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